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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기관, ‘생명 감수성’ 키우길

동물복지 위한 개 도살 금지법 제·개정 빨리 이뤄져야… 동물 학대 등 엄한 처벌 필요

올여름 복달임 음식을 둘러싼 개고기 판매업자와 동물권단체들과의 갈등에도 예년과 달리 의미 있는 변화가 나타났다. 부산 구포가축시장이 지난달 초복을 앞두고 전면 폐업한 데 이어 대구 칠성시장도 내년까지 정비될 전망이다. 개 도축부터 개고기 유통·판매까지 이뤄지는 전국 3대 개시장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지난해 성남 모란시장의 도축시설 철거 이후 상황이다. 국내 개 도살 및 식용 문화에 변화의 이정표가 될 만하다.


아직 갈 길은 멀다. 국내 현행법상 개 도살은 합법도 불법도 아니다. 불법이라면 금지 법규가 있어야 하는데 없다. 개가 축산법에는 식용 사육이 가능한 ‘가축’으로 분류돼 있으나 축산물위생관리법엔 명시돼 있지 않다. 그러니 개는 일반 축산물처럼 도축·유통 과정의 위생 관리조차 안 된다. 아무렇게나 키우고 도살할 수 있는 법적 사각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합법’이라며 버텨온 게 국내 개식용산업의 현주소다. 또 반려견을 죽인 주인이 식용 목적이라고 둘러대면 처벌하기 어렵다. 민법상 동물은 ‘물건’이어서 주인의 소유물 처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반려동물을 잔인하게 함부로 살해하거나 학대하는 행위는 동물보호법으로 처벌받는다. 따라서 개(동물)의 임의도살을 법률로 분명히 금지하는 게 절실하다. 동물보호법은 반려동물 학대 및 살해 행위를 최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실제 처벌 정도는 미미하다. 최근 3년간 검찰이 기소한 동물보호법 위반혐의 사건 512건 중 실형 선고는 4건이다. 대부분 정상참작을 이유로 소액 벌금 등 가벼운 처벌로 끝난다. 사법기관이 엄정 처분하지 않아 법마저 유명무실해지는 상황이다. 끔찍한 반려동물 학대·치사 행위가 줄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유네스코는 1978년 세계동물권선언에서 ‘모든 동물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한 생존권과 존재할 권리를 가지며 존중받아야 한다’ ‘어떤 동물도 잘못된 처우나 잔인한 행위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동물권은 인권과 마찬가지로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등을 천명했다. 독일은 1990년 민법에서 “동물은 물건이 아니며 별도의 법률에 의해 보호된다”고, 2002년 연방헌법에선 세계 최초로 국가가 동물보호의 책임이 있음을 명시했다. 스위스도 1992년 헌법에서 동물을 사물이 아닌 권리를 가진 생명의 주체로 인정했다. 반려동물 양육인구 1000만 시대를 맞은 한국이 선진국의 법과 제도를 외면할 이유가 없다.

동물보호법 위반혐의 사건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은 사법기관 종사자들의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과 판단이 별반 달라지지 않아서다. 최근 여성인권 관련 수사나 판결에 ‘성인지 감수성’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제 동물권과 동물복지가 실현될 수 있도록 법원·검찰·경찰이 ‘생명 감수성’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초동수사를 맡은 경찰의 반려동물에 대한 생명 감수성이 보다 충만해져야 한다.